<2015 컨텐포러리 아트 저널 서면 인터뷰>


송상희, 정희영(컨텐포러리 아트 저널)


서면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를 작업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과 고민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답’들을 간략하게 적어본다.
_역사는 진보하는가? (답: 아니다)
_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발전시켜온 계몽의 역사이고 현재는 자본주의에 의해 건설된 물질적 유토피아 인가? 생산력의 발전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질서를 만들었는가? (답: 아니다)
_현재는 ‘어디서 부터’ 이고 과거는 ‘어디까지’ 인가? (답: 현재는 역사 속에서 확인 될 수 있고 과거는 아직도 현재이다)
_이미지를 다루는 미술작가로써 나는 어떠한 전략을 써야하는가? (답: 몽타쥐기법)
_역사 속의 그들 /그 장소가, 결국 이미지라면, 그 이미지들을 ‘현재’로 어떻게 포착 시킬 것인가? (나의 답: 파편화된,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서로 부딪치게 한다. 역사적 잔해들의 집약적인 재구성. 변증법적 이미지(발터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에서 인용)
_그들은 누구인가? (답: 억압받는 자)


정희영: 역사적 사료, 변강쇠歌 텍스트, 그리고 오키나와의 대량학살 현장, 휴전선이 있는 철원 등지의 직접 방문… 이런 작업이 매우 힘들었을 거로 생각된다. “송상희는 펼쳐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한다. 그러나 의외의 방식으로 연결한다.”고 전시서문에서 언급되었는데, 인과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료, 텍스트, 드로잉들을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에서 연결한 이유와 의도가 궁금하다.

송상희: 내가 강하게 끌리는 것은 역사의 공시성이다. 직선적 시간개념이 아닌 공시적 시간개념. 과거의 어떤 경험을 기억하는 일이 인과관계에 맞게 연속적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릴때 무의식적으로 여기 저기 옮겨다니며 휙 지나가는 기억의 이미지들을 충동적으로 뚝뚝 떼어내고, 현재 시간 위에 턱턱 붙여 놓는다. 기억은 현재의 순간과 함께 숨쉬는 것이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뚝뚝 떼어내고 턱턱 붙여 놓는’ 그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현재의 감정 구조/프레임일 것이다. 즉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기억들을 과거 시간의 연관 속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발생한 상황 속에서 나의 현재 감정을 엮어 읽어내는 일이다. .
전시 서문에서 안소현 큐레이터가 언급한 ‘의외의 방식으로 연결한다’ 이 문구는 나의 작업의 첫 단추와도 같다. 그것은 2004년’ 버려진 알’ 과 ‘태평성대를 꿈꾸는 호랑이’ 등의 사진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작업은 2015년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도 항상 생각했던 작업이다. 11년 동안 이어지는 나의 고민은, 서사적 순환구조 속의 과거가 아닌 ‘그 과거’ 가 다시 현재화되어 우리의 삶 속으로 확 들어오게 과정을 이미지의 조합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고민하던 나에게 답을 준 책은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발터벤야민선집5. 최성만 옮김)이다. 나는 발터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미지들의 연결방식을 상상하고 계획했다. 이 책은 ‘문장’으로 읽으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데,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읽으면 뭔가가 보이는 듯한 마법같은 책이다. 발터벤야민은 "역사는 구성의 대상이며, 그 구성의 장소는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현재시간으로서의 충만한 시간"이라고 언급한다. (발터벤야민선집5, 345페이지) 나의 프로젝트의 의도는 현재와 과거의 관계를 꿰뚫어 보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어내는 것이다. 역사가 결국 이미지의 구성체라면, 시간 속에 고정된 과거/ 현재의 이미지들을 그 맥락에서 해체시킨다. 그리고 이미지 조각들을 모아 다양한 시간과 공간들 바탕으로 새롭게 관계맺기 하여 중층적으로
‘읽혀지도록’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의 작업 방법은 집약적인 편집(몽타쥐기법), 특정장소(ex, 민간인 학살 장소)의 드로잉 프로젝션, 그리고 다채널 영상 시스템이다.


정희영:같은 맥락에서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에서도 역사적 사료, 문학, 현장 등을 집요하게 아카이빙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방대한 역사적 근거, 객관적 지표로 판단되는 자료들을 예술의 장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반문도 가능할 것 같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가?

송상희:이 작업의 기본 대본은 변강쇠歌 성두본이다. 변강쇠歌의 주인공 옹녀와 변강쇠는 사회에서 추방된 자들이다. 옹녀는 그 시대의 터부가 온몸에 새겨져 있어 결국 자신의 땅에서 추방되었고, 강쇠는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이다. 변강쇠歌의 등장인물들은 점쟁이, 중, 떠돌이 초라니, 가객과 유랑악사, 마종, 각설이패, 사당패 등 온갖 하층민의 군상들이다. 호모사케르이다. 살아 있으나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을 한다. 그들의 말에는 논리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고 예의도 없다. 그것은 욕망의 언어이다. 그리고 그들의 욕망은 구체적이다. 현실적인 욕망을 걸러내지 않고 독하게 쏟아낸다. 그는 그녀에게 한 번 해주면 시체를 치워주겠다고 딜을 한다. 이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바로 그 때/ 그 사람들이다. 이 화자들을 나의 작업에는 어떻게 등장 시켜야 할 것인가? 나의 작업에는 배우가 없다. 아니 절대 배우를 쓸 수가 없었다. 화자는 또렷이 구체적 이미지로 등장해야 한다. 국민이 아닌 사람들,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 사람들, 몫이 없는 사람들, 과거에도 현재에도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현전하는, 또렷한 ‘그들’ 이다. 또한 그들은 나에게 시간 속에 고정된 1인이 아니라, 새롭게 조합된 복수체이다. 그들의 언어처럼, 그들의 조합도 논리적이지 않고 예의도 없고 분열적이고 비연속적이다. 파편화된 그들의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는 조합 속에서 나는 더 구체적인 ‘그들’ 이 되어 그 존재가 섬뜩하게 드러날 것이라 의도했다.


정희영:“송상희는 역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인간의 야만의 흔적들을 끌어올려 우리의 감각 앞에 펼쳐놓음으로써 그것들이 추상화되는 것을 방해한다”고 안소현 큐레이터가 전시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어떠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송상희:사명감. 아.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주제 넘는 일이다. 만약 나에게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허영에 가득 찬 애처러운 ‘비장함’ 일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커다란 풍차가 있다.(나는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다) 나는 이 풍차를 보면서 돈키호테를 생각한다. 육중하게 움직이는 풍차기계를 ‘살아있는 적’ 이라고 생각하고 “덤벼!” 하며 비장미 넘치게 칼을 휘두르던 돈키호테. 나는 돈키호테일까?
2000년 겨울, 유럽배낭여행 중에 아우슈비츠를 봐야한다는 간절함으로 폴란드 크라코브에서 시외 버스를 타고 비르케나우까지 찾아갔었다. 2003년 1983 KAL 기 폭파 현장의 사할린 바다를 봐야한다는 일념으로 일본 북해도 최북단 소야미사키에도 갔었다. 낯설고 매우 두렵지만 그래도 ‘그곳’을 찾아가는 것, 이것은 그냥 나의 팔자 아닐까. 싶다.
나시타니 오사무는 사카이 나오키와의 대화에서 ’ 근대는 죽음을 들판에 버려두었다’ 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문제는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존재 의미의 물음이 되었고, 근대의 상실된 죽음은 20세기가 되어 ‘발견해야 할 것’ 이 되었다’ 고 말하고 있다. (세계사의 해체, 페이지90-91). 이 말이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오래전부터 민간인 학살에 나는 마음이 많이..갔다. 국민보도원연맹 조사보고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사이트 참고)를 보면, 사건진상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미확인 학살까지 고려해본다면 ‘전 국토가 학살지’ 라고 언급한 내용이 있다. 전 국토는 학살지이고, 바다에는 아직 그들의 신발들이 떠다니고, 뻑뻑하게 고여있는 공기 속에서 우리는 ‘발견 되어야 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작업이 매개체가 되어, 들판에 버려진 죽음들이 다시 생생하게 말을 걸어오고, 그들이 전시 공간 구석에 모여서 웅성웅성 떠들고 함께 깔깔 웃는 그런 순간을 꿈꿔왔다. 내 작업이 그런 매개체 역할을 할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
이것은 사명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보이는 것을 작업할 뿐이다.


정희영: 육영수 여사로 분장해 8.15기념식장에서 쓰러지는 <국립극장>, 2004, 1983년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 당시 희생자들의 유일한 유품이었던 바다 위의 신발을 촬영한 <신발들>, 2010 등 이전 작업들 역시 제대로 이야기되지 못한 존재, 사건들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현대의 사건들을 다루었던 이전 작업들과 달리 이번 개인전 전시에서는 역사적, 문학적 사료들을 추적하며 과거의 사건들을 다룬다. 여전히 현시대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만, 이전 작업이 보다 가까운 과거를 다뤘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강렬함이 존재하는 듯하다. 작업적 태도가 변화한 이유가 무엇인가?

송상희:마음이 답답했다. 보이는 것도 답답했고 내가 사는 꼴도 답답했다. 지금은 곱고 잔잔하게 레이어를 몇 겹씩 깔아놓고 작업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괴물이 될지라도 막 외치자! 외쳐야 할 때가 되었다! 최선을 다해 집약적으로 집요하게 다 쏟아내자! 프로젝트 시작부터 이렇게 다짐했다. 지금 돌아보면 무기력증에 빈틈을 주지 않으려고 숨을 참으며 잰걸음을 달려왔던 것 같다. 사실 전시 오픈 후에 민망해서 작업을 다시 볼수가 없었다. 막 외치고 나니 허하고 민망하다. 심하게 오버한 것 같기도 하다.


정희영: <변강쇠歌2015: 사람을 찾아서> 작업은 전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2016년에 소개될 작업은 어떠한 이야기를 다룰지 기대된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의 형태와 이야기가 지속될 계획인가?

송상희:전편을 작업할 때에는 바로 완결편으로 계속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었다. 변강쇠歌 완결편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작업할 계획이다. 완결편은 전편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바뀔 것 같다. 전편까지의 느낌은 부채가 완전히 쫙 펴지지 못한 채, 부채결이 우글우글 불편하게 접혀있는 느낌이다. 부채가 편하게 쫙 펴진 시원한 느낌으로 완결편을 만들고 싶다. 완전 다른 작업처럼..
요즘 머리 속에 있는 작업들은 새로운 이야기들이다. 몇가지를 놓고 엮어 보며 구상하고 있는 중이다. 명랑하고 허황되지만 허를 찌르는 블랙코메디를 하고 싶다.


정희영: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예술현장에서의 차이가 있는가? 특히 한국미술계는 상대적으로 어떠한가? 비평적인 견해가 있다면 듣고 싶다.
외국인 예술가로 활동하기에 네덜란드는 어떠한가?

송상희:명확하게 답을 하고 싶지만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네델란드 예술현장도 잘 모르겠고 한국미술계의 현장도 잘 모르겠다. 나는 네델란드에서 활동하는 작가라기 보다는 네델란드에서 작업하는 아시아 이민 여성이다.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적어보겠다.
네델란드에 살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온전히 혼자있는 시간’ 이다. 네델란드의 나의 삶은 매우 단조롭고 외부와 고립되어 있다. 네델란드에 살면서 포기한 것이 있다면 한국말 책들/ PDF자료들이 가득한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이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 살았다면 얻은 것은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일 것이고, 포기한 것은 아마 ‘온전히 혼자있는 시간’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