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아트스펙트럼, 삼성미술관 리움 >


송상희, 우혜수 (삼성미술관 리움 선임학예연구원)


우혜수: 송상희씨의 작품세계는 <성공을 위한 몸 보정기>, 육영수여사 저격사건을 소재로 한 <어머니 A>, <푸른 희망> 등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여성주의적 시각의 작품들과, <버려진 알>, <태평성대를 꿈꾸는 호랑이> 등을 비롯하여 이번에 출품되는 <신기루>와 같이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를 소재로하는 작품들로 크게 특징지워질 수 있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들 기억 속의 과거를 끌어내어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행위로 일관되게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형식의 작업들의 출발점은 무엇인지,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송상희 : 나는 그저 ‘나 자신’ 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나 자신’ 이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비장애인 이성애자 여성이다. 즉 이 지점에서는 나는 나 개인이 아니다. 이것은 확실한 하나의 사회계층을 만들고 있다. 또한 공유 가능한 집단적 기억 혹은 행동양식 그리고 이 계층에만 해당되는 윤리관이 존재한다. 이런 내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너는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 그런데 이런 질문 끝에는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검은 먼지 덩어리 같은 ‘시스템들’ 이었다. 그 시스템들은 항상 내 발 밑에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다. 여기서, 또 질문이 생겨난다. 그 시스템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떤 힘에 의해 가동되는가? 이러한 의문들 위에 나 자신을 놓고 재검증 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나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일 수 있다. 이 과정이 나의 작업인 것이다. 결국 나는 나의 ‘정체성’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디든지 서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 믿음 자체가 일종의 억압일 수 있으며, 난 결국 허공에 떠있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나는 칼날 같은 곳 위에 정확하게 서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욕망들이 의문이 된 것이다.


우혜수:대부분의 작업들이 표면적으로는 무미건조하고 별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차가운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송상희:만약 나의 작품에서 차가움이나 섬뜩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 이미지의 상황이 우리 기억 속 어느 순간에선가 서로 공유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들은 개개인이 직접 체험하지 않았어도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가 문득 떠올려지는 것…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무언의 동의가 아닐까.


우혜수: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광개토대왕비의 형식적 구성(래핑작업)의 기원을 소품들의 래핑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래핑작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송상희: 래핑작업은 나의 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외국에 갈 때 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밑반찬들을 싸주시곤 했었는데, 그 반찬들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투명랩과 테잎으로 꼭꼭 싸매셨다. 나는 플라스틱 용기에서 그 랩과 테잎을 벗겨내고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가는 곳 마다 가지고 다녔다. 그 ‘껍질’ 들을 ‘엄마’ 라고 느꼈던 것이다. 아니 '엄마의 시선'이라고 믿고, 그것을 항상 의식하며 지냈다. 타인의 강요가 아닌 나 혼자 나의 감시망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억압과 안정감, 강박과 익숙함... 분열된 상황을 동시에 설정하였다.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자면 ‘착한 딸’이라는 판타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학/자위의 기제를 만들어 놓고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런 방식으로 되뇔 수 밖에 없는… 나의 고백이다.) 이것은 남성 중심적으로 구조화된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 여성에게 강요된 ‘착한 딸’ 혹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단적 강박증이자 여성이 가진 공동의 환상이다. 이것은 나의 경험에서 딸과 엄마의 미묘한 관계 속에 잘 드러난다고 본다. 그리고 이 ‘껍질들! ’ 이 주는 사적 의미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대입해 본 것이다.


우혜수: 작가는 주로 가부장적 사회구조, 우리의 무의식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역사 등과 같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항상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정적 의미를 의심하고, 파헤쳐 들춰내고, 상처를 내면서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광개토대왕비 작업에서는 작가의 어떤 입장을 드러내고자 하였는가?

송상희: 기억을 되살려보면, 초중고등학교 국사책 제일 앞면을 장식하고 있던 사진은 거의 대부분 광개토대왕비 사진이다. 어렸을 적에 그 사진을 보며 나의 엄지손가락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엄지손가락처럼 생긴 이 돌이 그리 위대한 돌이었다. 모든 것의 시발점이 바로 이 ‘돌’ 인 듯 했다. 만약 이 돌이 없었다면, 이 광개토대왕비가 없었다면 가짜들을 만들어서라도, 허상을 만들어서라도, 조작을 해서라도 뭔가를 증명해야 해. 다들 그렇게 처절하게 외치면서 굳게 다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감시의 눈’ 이자 영혼의 ‘아버지’ 인 것 같았다. 그것은 남계(男系)에서 우러나는 집단적 강박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 자신이 '분리' 되는 관점이 생긴다. (‘감시의 눈’ 과 영혼의 ‘아버지’, ‘강박증’ 에 관해서는 좀 더 예리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지만…)
1800년 전 고구려를 생각해보면. 망망대해와도 같은 허허 벌판에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터전을 가지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개념의 경계가 존재 할 수 있었을까? 근대 국민국가의 개념은 불과 20세기에서야 생성된 것이다. 그런 근대국가 개념을 1800년 전 상황에 끼워 맞추고 합리화하고, 고대 속에 현대인의 욕망을 매개 없이 투영하고. 이러한 정치적 의도에는 권력과 지배의 구조가 관계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보면 알 수 있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거대 남근주의의 한 모습 아닐까? 공동환상이다. 죽지 않고 떠도는 유령과도 같은 거대한 허상이다. 나는 허상을 비닐과 투명 테잎의 물성을 이용해서 허상 그 자체로 보여주고 싶었다.


우혜수: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해석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아시아 국가들간의 입장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해석과 입장의 차이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들의 어떤 남성적 패권주의, 확장주의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송상희: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고구려사 논쟁은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정치적으로 도구화되는 매커니즘을 드러내준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국가들의 민족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국가권력을 지탱하기 위한 정치적 기제로 작동한다. ‘고구려사는 중국사다’ 혹은 ‘고구려사는 한국사다’ 라는 주장들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민족주의로 무장되어있는 사고의 논리는 동일하다. 이것들을 의심하고 해체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우리들이 이렇게나 강조하고 있는 그 ‘민족’ 이라는 집단적 정체성, ‘우리는 하나’ 라는 구성원간의 동질감 속에 과연 나/여성은 인식의 주체로써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가 를 치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혜수: 래핑작업의 시초가 지극히 사적인, 여성적 감성에서 출발했다면, 광개토대왕비는 보다 공적인 차원,역사적인 관점에서의 작업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작가가 일관되게 가지고 있는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광개토대왕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좀 더 분명히 이야기해주기 바란다.

송상희: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를 제대로 보려면 두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회를 보고 듣고, 그것에 대해 ‘그들이 비판하는 지점’ 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이해함과 동시에 여성의 시선/관점에서 다시 검증해봐야 한다. 거창하게 말한다면, 관점의 차이를 공정(公正)화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지배규범과 상식들을 다른 렌즈를 끼고 다시 한번 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단계를 거치고 난 후에서야 온전히 ‘내가 스스로 보는 것’ 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나 자신을 많이 의심하고 있지만..) 이런 의미에서 보면 광개토대왕비는 민족주의의 살아있는 유령이며, 바로 그 ‘민족주의’는 거대 남근주의 욕망이다.


우혜수: 물성을 통해 개념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의도는 광개토대왕비를 그림자와 같은 허상의 존재로 제시하는 데에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와 함께 전시된 사진들 역시 허상 혹은 껍질이라는 작가의 관점을 잘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상희: 예전작업들은 주로 사진 작업이었다. 개념들을 몽타쥬하듯이 결합하여 하나의 사진 속에 담는 과정이다. 그런 작업들을 몇 번 하다 보니 그 방식으로 작업들이 반복되는 것 같아 해결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물성들이 주는 즉각적인 느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성이 주는 느낌이 곧 개념이 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또한 손과 몸을 쓰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인간의 노동력이 주는 절대적인 에너지의 무게와 그 에너지들이 한 순간에 쫙 빠져나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상태.. 이 상반된 두 가지 무게들이 같이 작동되는 작업..이번 작업하면서 내내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성공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우혜수: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주로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선험적 체험, 역사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주제를 다루고 싶은 계획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방향이 될지?

송상희: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의 방향은 잘 모르겠다. 나는 여태까지 관계들의 접점, 그 대상에만 집착해왔다고 느낀다. 이젠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나는, 나의 시선과 나의 가치관을 아직 믿을 수가 없다. 나의 관점에 스스로 많은 의심을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모두의 차이들을 적절히 개별화 하면서, 스스로 게토화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