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신화, 희망, 또 다른 진실들- 송상희의 최근 작업

만레이 슈(독립큐레이터, 타이페이)

지난 몇 년 동안 송상희는 2차대전 이후 남한에서 유포되었던 근대 국민국가의 여러 가지 신화들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이런 신화들은 전설, 민담, 역사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 기반해 국민적 집단의식의 일부로 정착했으며, 후기식민기 국가 형성 프로세스에서 의도적으로 유포될 때도 많았다. 작가는 대개 역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특정 상황이나 국가적으로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던 특정사건의 등장인뭉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신화에 개입한다. 그는 역사적 신화를 재상연해서 역사가 의심의 여지 없는 진실들의 연속체로 화석화하지 않도록 방지한다. 이때 작가의 연출된 연기는 남한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위치를 전경에 내세우면서 남성 지배적인 국가 형성 프로세스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을 언제라도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순종적이고 참한 존재로 그려내 미래 세대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해묵은 젠더적 편견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이러한 해체적 실천을 잘 보여주는 작업으로 3점 짜리 사진 연작<푸른 희망>(2004)을 들 수 있다. 가운데 사진은 월미도의 기록 이미지다. 이 섬은 맥아더 장군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상륙작전을 수행했던 곳으로, 한반도에서 냉전 체제와 본격적인 근대화, 급격한 경제 성장, 독재와 그에 대항하는 정치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분수령을 표시한다. 그러나 미군의 상륙이라는 행동은 그 자체로 여러가지 은유를 함축한다. 그것은 한반도에 침입한 외부적 권력에 대항해 원주민을 보호하거나 해방시켜줄 또다른 외부적 권력에 대한 기다림을 시사하고, 그럼으로써 상륙이 예정된 땅에 순종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덧씌운다. 사진의 배경에는 새벽녘의 하늘과 바다 사이에 가로놓인 황량한 섬이 보이는데, 전반적으로 음율하고 흐릿한 느낌이다. 바로 이런 역사적 이미지가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와 학교 교실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송상희는 여기에 다른 사진들을 대비시켜 의미의 역적을 꾀한다.
좌우측 사진은 작가 자신이 재연한 퍼포먼스 기록으로, 현대 한국 여성에게 교육되고 기대되는 이상형을 묘사한다. 그중 하나는 가족에게 헌신하는 전통적인 여성인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그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누구인가?) 몸과 정체성이 모두 돌로 변해 버린 모습이다. 망부석은 순수한 갈망 되에 다른 모든 욕망이 거세된 생명없는 살덩어리와도 같다. 그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은 남편의 귀향, 또는 국가의 사악한 적대 세력에 맞서 싸워줄 외부적 권력의 ‘상륙’ 뿐이지만,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는-그리고 근대 국가로서 한국의 여성화된 정체성 또한-냉전 체제와 그 이후의 전 지구적 권력 구조에 따라 결정되었다. 이러한 전통 여성 이미지의 현대적 사례는 송상희의 작업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를테면, 송상희는 <국립극장>(2004)이라는 비디오 작업에서 남한의 독재자 박정희의 아내였던 육영수를 연기했다. 작가는 1974년 광복절에 정체불명의 인물이 쓴 총에 맞고 육영수가 쓰러지는 극적인 순간을 재연한다. 영부인이 쓰러지는 장면을 18회 반복함으로써, 그는 국가의식과 관련해 여성의 운명이 어떻게 규정되고 그 이면에 어떤 트라우마와 불가사의가 숨어 있는지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영부인A>(2004)는 마치 역사가 영부인을 언제나 남편의 뒤에만 세워놓은다는 듯이 강력한 여성의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전경에 대세운다. 그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모호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슬픈가? 아니면 기쁜가? 그는 왜 슬프거나, 혹은 기쁜 것일까?
<푸른 희망>의 세 번째 사진은 현대 한국 여성의 초상이다. 관광 사진처럼 보이는 이 이미지에서, 작가는 버스 차장이 유니폼을 입고 월미도의 양지바른 해안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연기한다. 그가 카메라를 향해 상큼하고 희망에 찬 모습으로 미소를 지을 때, 그 이면에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근대화, 도시화 과정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삶의 진실들이 숨겨져 있다. 이렇게 은폐된 진실은 그의 왼쪽 소매 자락 아래 잘려나간 손의 빈 자리로만 암시된다. 아시아 문화권에 널리 퍼져있는 각종 버전의 망부석 전설-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아내의 이야기-에서 남편이 사라진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듯이, 이 여성이 어쩌다가 손을 잃었는지 그 속사정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이 여성은 어머니 세대와 달리 직업이 있다. 그의 일은 산업이나 공공 서비스 부문의 노동으로 통합되었다. 그는 사적 영역과 연관되곤 했던 전통적인 가족 노동력의 일부가 아니라 국가적 노동력에 속한다. 이러한 현대 여성은 잃어버린 남편을 기다리며 눈물짓는 아내와의 다른 유형의- 서글플 정도로 무고한- 꿈과 희망을 보여준다. 사회 전반에 개인주의가 만연하지만, 여성에게는 직장과 가정이라는 사회적 무대와 그 안에서의 이상적 전형이 훈육된다. 송상희의 조각적 설치 작업 <기계들>,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짓-바른 자세로 앉기, 몸 보정용 의자>,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짓-상식> (2001)은 바로 그 전형 주입의 기능이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명백히 전복적, 반역적 함의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음침한 유머 감각도 보여주는데, 이는 송상희와 같은 세대 여성들이 끊임없는 젠더 차별과 그에 따른 사회적 위계와 대면해 다름대로 독립성과 자신감을 성취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독립의 한 사례로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들은 가임 주기가 거의 끝날 때 까지 최대한 결혼을 미루려 한다. 자녀 양육의 부담이 여전히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이 지역의 출산율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컨템포러리 여성 작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아주 높은 편이고, 정부와 사적 부문에서 예술 창작을 재정적으로 비교적 후하게 지원한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여성 작가들이 모국을 떠나 개인적, 예술적 독립을 증진하고자 하며, 송상희 역시 바로 그런 맥락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송상희가 2006년 네델란드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이미 그의 작업에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물론 그가 유럽 생활의 힘든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버텨낼’ 수 있다면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중요한 변화가 잇다를 것이다. 그래도 현재 작가가 과거의 정체성과 어떤 식으로든 결별할 필요로 느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나친 해석일지는 몰라도, <그녀의 장례식>이나 (2006) 같은 작업들은 이러한 결별을 유머러스하게 상연한다. 또한 그는 ‘한국’이나 ‘아시아’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한국 작가의 위치에서 벗어나, 어디서 살고 또 작업을 하든 간에 전 지구적이고 지역적인 쟁점들을 폭넓게 다루는 그야말로 ‘작가’로 거듭날 조짐을 보인다. 소위 비서구권 작가들은 국제적 수준으로 ’부상’ 하는 과정에서 흔히 이러한 ‘작가’되기의 강제와 개면하게 된다. 이는 작가의 자의식, 관심, 인식론적 틀, 더 나아가 작가가 속한 미술 커뮤니티, 작가가 겨냥하는 일반 공증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다. 모국을 떠난 비서구적 작가의 ‘해방’ 과정에서 이러한 탈식민주의와 전지구화의 문화 정치적 지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여기서 작가는 다양한 사회적 현실의 다양한 정체성을 이루는 거대한 네트워크와 한테 엮인 개인으로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된다. 따라서, 송상희가 한국 민중미술의 오랜 전통에 속하는지 아니면 현재 전 지구적 규모로 부상하는 한층 광범위한 정치적 예술에 속하는지 질문하는 것은 그의 작업을 해석하는 데 어떤 참조들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 것과 같다. 작가가 선보이는 각각의 작업, 작가가 관심을 가지는 사회정치적 시나리오들, 심지어 작가아 대한 이론적 틀짓기 그 자체까지도 까다로운 맥락화의 대상이다.
송상희의 공공 프로젝트<달맞이 꽃>(2006)은 사회적 참여로서 작가의 예술적 실천이 변화한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업은 암스테르담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서 출발한다. 네델란드는 매춘을 합법화하고 정부에서 지원하면서 관용적인 국가 이미지를 강조해 왔다. 여기서 작가는 성 노동자를 ‘매춘부’라는 정체성으로 재단하지 않고 국제 성 노동자 연합에 속한 개인들로 접근해 그들에게 시를 청탁하고 밤마다 유명한 ‘홍등가’에서 회합을 열었다. 그리하여 홍등가의 공적 공간 매춘업의 사회적 이미지레 속박되고 은폐되었던 ‘개인’으로서의 국제 성 노동자들이 대화하는 문학적 장이 되었다. 이 회합의 주체자이자 매개자로서 작가 또한 이 자리에서는 그저 개인이다. 그는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자신과 유사한 (물론 자신과 다르기도 한) ‘자기 존재와 자기 인식의 구조’를 공유하는 다른 개인들에 대한 괌심을 표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변신이야기 제16권>(2008)은 여태까지 나온 송상희 작업 중에서도 가장 야심차다. 이 작업은 연필 드로잉애니메이션 비디오와 남한 모항의 끔찍한 기름 유출사고 현장 비디오 기록, 그외 고래, 석유, 초음파 장비, 공룡에 대한 각종 기록과 모형- 여기에는 템즈 강에서 길을 잃고 사망한 향유고래에 대한 언론의 보도자료도 포함된다-으로 구성된다. 작업의 중심을 점하는 애니메이션은 인간과 유사한 존재 코오라와 그의 연인 플레시오사우르스, 그리고 이들을 남몰래 지켜보기만 하는 리바이어던의 사랑이야기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제15권의 연장선상에서, 이 애니메이션은 오비디우스 특유의 신화적 변신 모티프를 차용해 우주와 그 피조물들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 공룡, 고래, 석유 전쟁, 생태계 파괴의 상호관계를 그랴내면서 성경과 진화, 과학적 이론과 신화적 세계를 결합시키는 복잡한 혼성체로서, 식인 풍습, 자살, 복수, 파국이 뒤섞인 기괴한 도덕적 우화다. 기존 문명의 대서사시와 달리, 이 작업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은 특정 젠더에 고착되지 않은 채 낯선 사랑이야기를 펼펴보이면서 인간의 탐욕에 종지부를 찍는 (여)신의 강력하고 파괴적인 복수를 수행한다. 송상희는 이 작업을 통해 구각 신화해서 전 지구적 신화로 관심으로 확대하면서 작가 일반의 복잡한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